[뉴스엔 김범석 기자]
개인적으로 이태원 압사 사고의 트라우마가 있음을 고백한다. 지난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다중밀집사고 사진과 영상이 1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웃고 보는 예능을 왜 다큐로 보느냐’는 비판엔 얼마든지 수긍할 마음이 있다.
2월 9일 방송된 SBS 설 특집 ‘골림픽’을 보며 쉽게 웃어 넘길 수 없는 장면을 마주했다. ‘타이머 단체 사진 찍기’ 코너였다. 두 팀으로 나뉜 70여 명의 ‘골때녀’ 선수, 감독들이 서로를 밀치며 좁은 사각 포토 프레임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경기였다. 사진에 얼굴이 많이 나온 팀이 이기는 방식이었는데 출발선에서 코끼리 코 5바퀴를 돈 뒤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이 과정에서 상대 팀을 한 명이라도 더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힘쓰는 팀전이었다.
카메라는 선수들이 비틀거린 채 넘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밀고 깔리는 모습을 짧은 컷으로 나눠 담아 웃음을 유발했다. 어떻게든 포토존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지지대를 잡은 채 안간힘을 쓰는 모습, 아예 지면에서 나무 프레임을 밟고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모습도 등장했다. 출연자는 모두 웃고 있었지만 보는 사람은 어쩐지 조마조마했다.
‘저러다 넘어져서 골절상이라도 입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 무렵, 끔찍한 이태원 사고 모습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골림픽’은 부상의 위험 등 여러 문제가 겹쳐 폐지된 MBC ‘아육대’를 롤모델 삼은 프로 아닌가. 예능국에 기출문제 게임 아이템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왜 굳이 이태원 참사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게임을 집어넣어야 했을까.
‘타이머 단체 사진 찍기’ 게임은 ‘골림픽’이 론칭된 작년 설에 처음 등장했다. 분당 시청률이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포함됐을 것이다. 이를 기획한 작가와 출연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혹시 모를 사고, 또는 누군가 이를 보고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경험 많은 윗선의 판단이 아쉬울 뿐이다.
이태원 사고 이후 지하철을 탈 때마다 달라진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다.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탑승 밀도가 높으면 선뜻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CP나 예능본부장이 러시아워에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면 ‘타이머 단체 사진 찍기’ 같은 게임을 수정 보완하거나 교체 지시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수평을 강조하는 조직이라도 예스맨만 가득하다면 서서히 녹이 슬고 부패하는 법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타성에 젖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의식적으로 반대편에 서서 여러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대비할 때 조직은 건강해진다. 텐션을 높여주는 쓴소리 전담 레드팀의 중요성이다.
항공 철도 사고 매뉴얼은 피로 쓰여졌다는 말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재산 피해를 대가로 만들어진 사후 대비책인 셈이다. ‘작년에도 별 문제 없었으니까’라는 안일함 때문에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능 명가 SBS가 헤아려줬으면 싶다.
뭐만 하면 불편하다 트집잡고
좀 냅둬라
그냥 어거지로 끼워맞추기구만 이것도 불편 저것도 불편하면 대체 무슨 게임을 하냐